다큐 ‘더 리퍼’ 넷플릭스 범죄

 

더 리퍼(The Ripper).

1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4부작 범죄실화 다큐멘터리 더 리퍼는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무고한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검거 과정을 다뤘다.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대신, 풍부한 사회적 맥락에서 되돌아보며 극악무도한 범죄가 끼친 파장을 되돌아본다.
다큐멘터리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사건에 대한 경찰과 언론의 태도다.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범행 대상을 쉽게 일반화한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범죄인 셈이다. 초기 희생자가 가난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매매를 했다고 단정하고 매춘부 연쇄살인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요크셔 지방은 탈공업화로 빈곤 문제가 대두돼 생계가 어려운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였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희생자를 편견 섞인 시선으로 다룬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범인은 희생자가 가진 배경보다 자신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노렸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아예 매춘부로 축소된 탓에 사회적 관심도 적다. 가난한 성매매 여성의 죽음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0대 소녀가 네 번째 희생자로 발견되자 경찰과 언론은 매춘부로 오해받은 ‘죄없는’ 희생자라는 말을 쓴다. 첫째, 희생자의 배경을 차별하는 태도가 화가 나고 범행 대상을 여전히 여성이 아닌 매춘부로 한정하는 태도도 안타깝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취재하는 매체가 비슷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 집단임을 지적하지만 매우 중요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처음부터 여성을 싫어하는 왜곡된 시선이 개입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빅토리아 시대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에서 따온 ‘요크셔 리퍼’라는 별명까지 붙여준다. 국내 언론이 무개념으로 쓰는 빚투처럼 희생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경찰 수사를 비웃듯 연쇄살인은 이어지고 범행 대상은 중산층 거주지역으로 확대된다. 이제 사건은 영국 정부도 관심을 가질 만큼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무능력하다. 상황이 악화되자 여성들에게 외출을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악명 높은 연쇄살인이 여성의 활동을 제약하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동안 여권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오던 움직임을 한 단계 후퇴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초기 수사에서 희생자를 성매매 여성으로 한정하고 외출 자제를 호소하는 태도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 발상이다. 여성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외치며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범인 피터 서클리프는 운 좋게 검거되는데 이를 자신의 공인처럼 웃으면서 기자회견을 하는 경찰 간부들은 한심하다. 더 빨리 검거할 수 있었는데 (수차례 조사를 받았지만…) 자랑스럽게 웃으며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는가. 악마 같은 인간 피터 사클리프(지난달 코로나에서 사망)는 당연히 최악의 존재지만 그보다는 이 사건이 장기화되고 난항에 빠진 배경에 관심이 가서 이 같은 강력범죄와 희생자를 올바른 태도로 대하고 있을지 주목된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인 여성을 공격하는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https://www.youtube.com/watch?v=LcFtS9wpoF0&t=17s